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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선습

만물 박사(鏡 虛) 2011. 10. 9. 08:17

《동몽선습(童蒙先習)》

수편(首篇)

 

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 最貴 所貴乎人者 以其有五倫也

[풀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만물(萬物) 가운데에 오직 사람이 가장 귀중(貴重)하니,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다섯 가지 기본적 실천덕목(實踐德目), 즉 오륜(五倫)이 있기 때문이다.

 

是故 孟子曰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人而不知有五常 則其違禽獸 不遠矣

[풀이] 그래서 맹자(孟子)가 “부모(父母)와 자식 사이에는 친애(親愛)함이 있으며[父子有親],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으며[君臣有義], 남편(男便)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으며[夫婦有別],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으며[長幼有序], 친구와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다[朋友有信].”고 말씀하였다. 사람으로서 이 다섯 가지 변함없는 도리인 오상(五常)을 알지 못하면 짐승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然則父慈子孝 君義臣忠 夫和婦順 兄友弟恭 朋友輔仁然後 方可謂之人矣

[풀이]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孝道)하며, 임금은 신하에게 의(義)롭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忠誠)하며, 남편은 집안 사람들을 화목하게 다스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順從)하며,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하며, 친구간에는 서로 인(仁)의 덕을 배양한 뒤에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父子有親?

父子 天性之親 生而育之 愛而敎之 奉而承之 孝而養之 是故 敎之以義方 弗納於邪 柔聲以諫 不使得罪於鄕黨州閭

[풀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다[父子有親]

부모와 자식은 천성적(天性的)으로 친한 관계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사랑하고 가르치며, 자식은 부모를 받들어 부모님의 뜻을 이어가고 효도(孝道)하고 봉양(奉養)해야 한다. 이 때문에 부모는 자식을 올바른 도리로 가르쳐서 자식이 올바르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해야 하며, 자식은 부모가 잘못이 있으시거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간(諫)하여 부모가 고을에서 죄(罪)를 짓지 않게 해야 한다.

 

苟或父而不子其子 子而不父其父 其何以立於世乎 雖然 天下 無不是底父母 父雖不慈 子不可以不孝

[풀이] 만일 혹시라도 부모이면서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자식이면서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상에 서서 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천하(天下)에 옳지 않은 부모는 없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孝道)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昔者 大舜 父頑母? 嘗欲殺舜 舜 克諧以孝 烝烝乂 不格姦 孝子之道 於斯至矣

[풀이] 옛날 중국의 위대하신 순(舜)임금이 그 아버지는 사납고 어머니는 모질어서 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순은 효도로써 이들을 화합(和合)시켜서 끊임없이 부모의 잘못을 다스려 부모로 하여금 악한 일을 하는 데에 이르지 않게 하셨으니, 효자의 도리가 여기에서 지극하게 드러났다.

 

孔子曰 五刑之屬 三千 而罪莫大於不孝

[풀이] 공자(孔子)가 “다섯 가지 형벌[五刑]에 해당하는 죄목이 3천 가지인데 그 중에 불효(不孝)보다 더 큰 죄가 없다.”고 말씀하였다.

*다섯 가지 형벌이란 죄목을 이마에 새기는 묵형(墨刑), 코를 베는 의형(?刑), 발꿈치를 베는 비형(?刑), 거세하는 궁형(宮刑), 목을 베는 대벽형(大?刑) 등인데, 묵형의 종류가 천 가지, 의형의 종류가 천 가지, 비형의 종류가 5백 가지, 궁형의 종류가 3백 가지, 대벽형의 종류가 2백 가지로 합하여 모두 3천 가지이다.

 

?君臣有義?

君臣 天地之分 尊且貴焉 卑且賤焉 尊貴之使卑賤 卑賤之事尊貴 天地之常經 古今之通義

[풀이]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다[君臣有義]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처럼 분명히 구분되는 관계이다. 임금은 높고 귀(貴)하며 신하는 낮고 천(賤)하니, 높고 귀한 사람이 낮고 천한 사람을 부리고, 낮고 천한 사람이 높고 귀한 사람을 섬기는 것은 천지간에 변치 않는 법칙[常經]이며 예나 지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의리(義理)이다.

 

是故 君者 體元而發號施令者也 臣者 調元而陳善閉邪者也 會遇之際 各盡其道 同寅協恭 以臻至治

[풀이] 그러므로 임금은 하늘의 이치(理致)를 본받아 호령을 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요, 신하는 하늘의 이치를 조화(調和)시켜 임금에게 착한 일을 아뢰고 부정(不正)한 일을 막는 사람이다. 임금과 신하가 만날 때에 각각 자신의 도리를 다하여 함께 공경하여 이상적(理想的)인 정치(政治)를 이루어야 한다.

 

苟或君而不能盡君道 臣而不能修臣職 不可與共治天下國家也 雖然 吾君不能 謂之賊

[풀이] 만일 혹시라도 임금이면서 임금의 도리(道理)를 다하지 못하며 신하이면서 신하의 직책을 닦지 못한다면, 함께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 비록 그렇지만 ‘우리 임금은 훌륭한 정치를 베풀 수 없다’고 말하는 이를 임금을 해치는 자라고 한다.

 

昔者 商紂暴虐 比干 諫而死 忠臣之節 於斯盡矣 孔子曰 臣事君以忠

[풀이] 옛날에 상(商)나라 주왕(紂王)이 모질고 사나웠는데 주왕의 숙부인 비간(比干)이 간언(諫言)하다가 죽었으니 충신(忠臣)의 절개가 여기에서 지극하게 드러났다. 공자가 “신하는 임금을 충성(忠誠)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夫婦有別?

夫婦 二姓之合 生民之始 萬福之原 行媒議婚 納幣親迎者 厚其別也

[풀이]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다[夫婦有別]

남편과 아내는 성(姓)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합한[二姓之合] 것이다. 이는 백성들이 태어나게 된 시초이며 모든 복의 근원이니, 중매를 통하여 혼인을 의논하며[議婚] 폐백을 들이고[納幣] 친히 맞이하는 것은[親迎] 그 구별을 두터이 하기 위해서 치르는 절차이다.

 

是故 娶妻 不娶同姓 爲宮室 辨內外 男子 居外而不言內 婦人 居內而不言外

[풀이] 그러므로 아내를 맞아들이되 같은 성[同姓]을 취하지 않으며, 집을 짓되 안과 밖을 구별하여, 남자는 바깥채에 거처하여 안의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아내는 안채에 거처하여 밖의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苟能莊以?之 以體乾健之道 柔以正之 以承坤順之義 則家道正矣

[풀이] 만일 남편은 엄숙한 모습으로써 집안 사람들을 대하여 하늘의 굳건한 도리[乾健之道]를 본받고 아내는 부드러운 태도로써 집안 사람들을 바로잡아 땅이 하늘에 순종하는 도리[坤順之義]를 받든다면 집안의 도리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反是而夫不能專制 御之不以其道 婦乘其夫 事之不以其義 昧三從之道 有七去之惡 則家道索矣

[풀이] 이에 반하여 남편이 아내를 제대로 제어(制御)하지 못하여 올바른 도리로 집안 사람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의 과실을 틈타 올바른 도리로 남편을 섬기지 않아서, 부인이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 즉,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하는 삼종지도(三從之道)에 어둡고, 남편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악행 즉,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거나[不順舅姑], 자식이 없거나[無子], 행실이 음란하거나[淫行], 질투하거나(嫉妬), 나쁜 병이 있거나[惡疾], 말이 많거나[口舌], 도둑질을 하는[盜竊]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으면 집안의 도리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須是夫敬其身 以帥其婦 婦敬其身 以承其夫 內外和順 父母其安樂之矣

[풀이] 모름지기 남편은 자기 몸을 삼가서 아내를 잘 거느리고, 아내 또한 자기 몸을 공경하여 남편을 잘 받들어서 내외(남편과 아내)가 온화하고 순종해야 부모께서 편안하고 즐거워하실 것이다.

 

昔者 ?缺 ? 其妻?之 敬 相待如賓 夫婦之道 當如是也 子思曰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풀이]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진(晉)나라 사람 극결(?缺)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때, 그 아내가 들밥을 내왔는데 서로 공경하여 손님처럼 대하였으니, 부부간의 도리는 이와 같아야 한다.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가 “군자의 도리는 부부 사이에서 시작된다.”고 말씀하였다.

 

?長幼有序?

長幼 天倫之序 兄之所以爲兄 弟之所以爲弟 長幼之道 所自出也 蓋宗族鄕黨 皆有長幼 不可紊也

[풀이]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다[長幼有序]

어른과 어린이는 하늘이 차례 지어준 관계이다. 형(兄)이 형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실천하고 아우가 아우로서 해야 할 도리를 실천하는 것이 어른과 어린이의 도리가 비롯된 유래(由來)이다. 종족(宗族)과 향리(鄕里)에는 모두 어른과 어린이가 있으니, 그 차례를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徐行後長者 謂之弟 疾行先長者 謂之不弟 是故 年長以倍則父事之 十年以長則兄事之 五年以長則肩隨之 長慈幼 幼敬長然後 無侮少陵長之弊 而人道正矣

[풀이] 천천히 걸어서 어른보다 뒤에 쳐져서 가는 것을 “공손함[悌]”이라 이르고, 빨리 걸어서 어른보다 앞서 걸어가는 것을 “공손하지 못함[不悌]”이라 이른다. 그래서 나이가 갑절이 많으면 아버지처럼 섬긴다. 인생은 10년을 한 단위로 삼으니 여기서 나이가 갑절이 많다는 것은 20살이 많음을 이른다. 열 살이 많으면 형처럼 섬기고, 다섯 살이 많으면 어깨 폭만큼 뒤쳐져서 따라간다. 어른은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는 어른을 공경한 뒤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거나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져서 사람의 도리[人道]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而況兄弟 同氣之人 骨肉至親 尤當友愛 不可藏怒宿怨 以敗天常也

[풀이] 하물며 형제는 한 어버이에게서 태어나 같은 기운[同氣]을 함께 나눈 사람이다. 뼈와 살을 나눈 지극히 가까운 관계이니 더욱 우애(友愛)해야 할 것이요. 노여움을 마음 속에 감추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오래 간직해서 하늘의 떳떳한 도리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昔者 司馬光 與其兄伯康 友愛尤篤 敬之如嚴父 保之如?兒 兄弟之道 當如是也 孟子曰 孩提之童 無不知愛其親 及其長也 無不知敬其兄也

[풀이] 옛날 북송(北宋) 때 사마광(司馬光)은 그의 육촌 형인 백강(伯康)과 우애가 매우 돈독하였다. 육촌 형을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하고 어린아이처럼 보호했으니, 형제간의 도리는 이와 같아야 한다. 맹자(孟子)는 “두세 살 된 어린아이도 자기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가 없으며, 장성해서는 자기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다.”고 말씀하였다.

 

?朋友有信?

朋友 同類之人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 友善柔 友便? 損矣

[풀이] 친구와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다[朋友有信]

붕우(朋友)는 부류(部類)가 같은 사람이다. 유익한 벗이 세 종류[益者三友]가 있고 해로운 벗이 세 종류[損者三友]가 있으니, 정직한 사람을 벗하며[友直] 진실한 사람을 벗하며[友諒]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友多聞] 유익하고, 편벽된 사람을 벗하며[友便?] 비위만 맞추는 사람을 벗하며[友善柔] 말재주만 뛰어난 사람을 벗하면[右便?] 해롭다.

 

友也者 友其德也 自天子 至於庶人 未有不須友以成者 其分 若疎 而其所關 爲至親

[풀이] 벗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덕(德)을 보고 벗하는 것이다. 천자(天子)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벗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그 관계는 소원(疏遠)한 듯하지만 관련되는 것은 지극히 밀접하다.

 

是故 取友 必端人 擇友 必勝己 要當責善以信 切切??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풀이] 이 때문에 벗을 사귈 때에는 반드시 단정한 사람을 사귀고, 벗을 선택할 때에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친구간에는 선하기를 요구하되[責善] 진실한 태도로써 하고, 간절하고 자세히 권면하며 성심으로 말해주고 선으로 인도하되 안 되면 교제를 그만두어야 한다.

 

苟或交遊之際 不以切磋琢磨 爲相與 但以歡狎戱謔 爲相親 則安能久而不疎乎

[풀이] 만일 혹시라도 서로 사귈 때에 학문을 갈고 닦는 것[切磋琢磨]으로 서로 함께 하지 않고 다만 기뻐하고 장난하고 농담하는 것으로 서로 친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오래되어도 소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昔者 晏子與人交 久而敬之 朋友之道 當如是也 孔子曰 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信乎朋友 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풀이] 옛날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인 안자(晏子)는 남과 교제하되 사귄 지가 오래되어도 공경하였으니 친구 사이의 도리는 이와 같아야 한다. 공자(孔子)는 “친구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도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에게 신임을 얻는 데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서 순종한다고 인정받지 못하면 친구들에게도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였다.

 

?總論?

此五品者 天敍之典而人理之所固有者 人之行 不外乎五者而唯孝爲百行之源

[풀이] ?총론(總論)?

위의 다섯 가지 일 즉 오륜(五倫)은 하늘이 펼쳐 준 법(法)이고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도리(道理)이다. 사람의 행실(行實)이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是以 孝子之事親也 鷄初鳴 咸?漱 適父母之所 下氣怡聲 問衣?寒 問何食飮 冬溫而夏? 昏定而晨省 出必告 反必面 不遠遊 遊必有方 不敢有其身 不敢私其財

[풀이] 그러므로 효자(孝子)가 부모를 섬길 때에는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洗手)하고 양치질한 뒤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기운을 낮추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입고 계신 옷이 더운지 추운지 여쭙고 어떤 음식(飮食)을 드시고 싶은지 여쭙는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돌봐 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여쭈며,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얼굴을 뵙는다. 멀리 가서 놀지 않으며, 나가 놀되 반드시 일정한 장소를 두며, 감히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감히 재물(財物)을 사사로이 소유하지 않는다.

 

父母愛之 喜而不忘 惡之 懼而無怨 有過 諫而不逆 三諫而不聽 則號泣而隨之 怒而撻之流血 不敢疾怨 居則致其敬 養則致其樂 病則致其憂 喪則致其哀 祭則致其嚴

[풀이] 부모가 나를 사랑해 주시면 기뻐하고 잊지 않으며, 미워하시면 두려워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가 과실이 있으시면 말리되 거스르지 않으며 세 번 간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시면 부르짖고 울면서 따르며 부모가 노(怒)하시어 종아리를 때려 피가 나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평소 거처할 때에는 공경(恭敬)을 극진히 하고, 봉양(奉養)할 때에는 즐거움[樂]을 극진히 하고, 병환이 드셨을 때에는 근심[憂]을 극진히 하고, 상(喪)을 당해서는 슬픔[哀]을 극진히 하고, 제사 지낼 때는 엄숙함[嚴]을 극진히 해야 한다.

 

若夫人子之不孝也 不愛其親 而愛他人 不敬其親 而敬他人 惰其四肢 不顧父母之養 博奕好飮酒 不顧父母之養 好貨財 私妻子 不顧父母之養 從耳目之好 以爲父母戮 好勇鬪? 以危父母

[풀이] 자식이 불효(不孝)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어버이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자기 어버이는 공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공경하며, 사지(四肢)를 게을리하여 부모 봉양을 생각하지 않으며, 장기나 바둑,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생각하지 않으며,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 사랑해서 부모 봉양을 생각하지 않으며, 눈과 귀에 즐거운 것만 따라서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맹을 좋아하여 싸우고 사나워서 부모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噫 欲觀其人 行之善不善 必先觀其人之孝不孝 可不愼哉 可不懼哉 苟能孝於其親 則推之於君臣也 夫婦也 長幼也 朋友也 何往而不可哉 然則孝之於人 大矣 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

[풀이] 아! 그 사람의 행실(行實)이 착한지 아닌지를 살펴보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孝道)하는지 아닌지를 살펴볼 것이니, 삼가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부모에게 효도한다면 그 마음을 군신(君臣) 사이와 부부(夫婦) 사이, 어른과 어린이[長幼] 사이와 친구[朋友] 사이에 미루어 나감에 어디에 적용한들 불가하겠는가. 그렇다면 효도는 사람에게 있어서 중대한 것이지만 또한 고원(高遠)하여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然 自非生知者 必資學問而知之 學問之道 無他 將欲通古今 達事理 存之於心 體之於身 可不勉其學問之力哉 玆用?其歷代要義 書之于左

[풀이] 그러나 스스로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生知者]가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學問)을 통해 알아야 한다. 학문의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니 고금의 역사를 통달하며 사리를 통달하여 이를 마음에 보존하며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니 학문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역대(歷代)의 중요한 의리를 뽑아 아래에 기록한다.

 

蓋自太極肇判 陰陽始分 五行 相生 先有理氣 人物之生 林林總總 於是 聖人 首出 繼天立極 天皇氏 地皇氏 人皇氏 有巢氏 燧人氏 是爲太古 在書契以前 不可考

[풀이] 태극(太極)이 처음으로 판별(判別)되어 음(陰)과 양(陽)이 비로소 나뉨으로부터 오행(五行)이 서로 낳음에 먼저 이(理)와 기(氣)가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과 사물을 낳음이 많고 많더니 이에 성인(聖人)이 먼저 나와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인간의 표준을 세웠으니,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 유소씨(有巢氏), 수인씨(燧人氏)는 태고시대(太古時代)의 성인이다. 이 시대는 문자가 있기 전이어서 자세히 알 수가 없다.

 

伏羲氏始?八卦 造書契 以代結繩之政 神農氏作?? 製醫藥 黃帝氏用干戈 作舟車 造曆算 制音律 是爲三皇 至德之世 無爲而治

[풀이] 복희씨(伏羲氏)가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긋고 문자[書契]를 만들어서 노끈의 매듭으로 의사 소통을 했던[結繩] 정사를 대신하였고, 신농씨(神農氏)가 쟁기와 보습을 만들고 의술과 약을 만들었으며, 황제씨(黃帝氏)가 방패와 창을 사용하고, 배와 수레를 만들고 달력과 산수(算數)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었으니 이들 세 황제(皇帝)를 삼황(三皇)이라 한다. 이때는 사람들의 덕(德)이 지극한 세상이었기 때문에 인위적인 정치를 베풀지 않고도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少昊 ?頊 帝? 帝堯 帝舜 是爲五帝 皐夔稷契 佐堯舜 而堯舜之治 卓冠百王 孔子定書 斷自唐虞

[풀이] 소호(小昊), 전욱(?頊), 제곡(帝?), 제요(帝堯), 제순(帝舜) 다섯 임금을 오제(五帝)라 하는데, 고요(皐陶), 기(夔), 직(稷), 설(契)이 요임금과 순임금을 보좌하여 요임금과 순임금의 다스림이 모든 왕의 으뜸이 되었다. 공자가 ≪서경(書經)≫을 정리할 때에 요임금의 당(唐)과 순임금의 우(虞)시대부터 기록하였다.

 

夏禹 商湯 周文王武王 是爲三王 歷年 或四百 或六百 或八百 三代之隆 後世莫及 而商之伊尹傅說 周之周公召公 皆賢臣也 周公 制禮作樂 典章法度 粲然極備

[풀이] 하(夏)나라 우왕(禹王), 상(商)나라 탕왕(湯王), 주(周)나라 문왕(文王)?무왕(武王)을 삼왕(三王)이라 한다. 왕조의 수명이 혹은 4백 년, 혹은 6백 년, 혹은 8백 년이었으니, 이 삼대(三代) 시대의 융성했던 문물을 후세(삼대 시대 이후)에는 따라가지 못했고 상나라의 이윤(伊尹)과 부열(傅說), 주나라의 주공(周公)과 소공(昭公)은 모두 뛰어난 신하들이었다. 주공이 예악(禮樂)를 만드시니 제도와 문물, 법도가 찬란하게 갖추어졌다.

 

及其衰也 五覇?諸侯 以匡王室 若齊桓公 晉文公 宋襄公 秦穆公 楚莊王 迭主夏盟 王靈 不振

[풀이] 주(周)나라가 쇠퇴하자 춘추시대 다섯 명의 패자인 오패(五覇)가 제후들을 이끌어 왕실(王室)을 바로 세웠으니 제 환공(齊桓公)과 진 문공(晉文公), 송 양공(宋襄公)과 진 목공(秦穆公), 초 장왕(楚莊王)이다. 이들이 주나라 천자 대신 차례로 중국의 맹약을 주도하니 주(周)나라 왕실의 위엄이 떨쳐지지 못하였다.

 

孔子以天縱之聖 轍環天下 道不得行于世 刪詩書 定禮樂 贊周易 修春秋 繼往聖, 開來學 而傳其道者 顔子曾子 事在論語 曾子之門人 述大學

[풀이] 공자(孔子)는 하늘이 낸 성인(聖人)으로서 수레를 타고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지만[轍環天下] 도(道)가 세상에 시행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다듬고[刪定] 예(禮)와 악(樂)을 정리하였으며 ≪주역(周易)≫을 부연 설명하고 ≪춘추(春秋)≫를 편수하여, 지나간 성왕(聖王)을 계승하고[繼往聖] 후세의 학자들을 인도하였고[開來學] 그 도(道)를 전수 받은 이는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기록은 ≪논어(論語)≫에 실려 있다. 증자의 문인이 ≪대학(大學)≫을 기술하였다.

 

列國則曰魯 曰衛 曰晉 曰鄭 曰趙 曰蔡 曰燕 曰吳 曰齊 曰宋 曰陳 曰楚 曰秦 干戈日尋 戰爭不息 遂爲戰國 秦楚燕齊韓魏趙 是爲七雄

[풀이] 이 당시 주나라에 조공을 바치던 여러 제후국 노(魯)·위(衛)·진(晉)·정(鄭)·조(曹)·채(蔡)·연(燕)·오(吳)·제(齊)·송(宋)·진(陳)·초(楚)·진(秦)나라 등이니 이들 나라가 무력으로 다투어 전쟁이 그치지 않아 마침내 전국시대가 되었다. 이 중 진·초·연·제·한·위·조의 일곱 나라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한다.

 

孔子之孫子思 生斯時 作中庸 其門人之弟孟軻 陳王道於齊梁 道又不行 作孟子七篇 而異端縱橫功利之說 盛行 吾道不傳

[풀이]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가 이 시기에 태어나 ≪중용(中庸)≫을 지었고 그 문인의 제자인 맹자(孟子)가 제(齊)나라와 양(梁)나라에서 왕도(王道)정치를 설파했으나 맹자의 도(道) 역시 시행되지 못하여 ≪맹자≫ 7편을 저술하였다. 이단(異端)과 종횡(縱橫)과 공리(功利)의 학설이 성행해서 우리 유학(儒學)의 도(道)가 전해지지 못하였다.

 

**여기서 이단(異端)은 맹자 당시에 위아(爲我)를 주장하던 양주(楊朱)와 겸애(兼愛)를 주장하던 묵적(墨翟)의 학설을 가리킨다. 종횡은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의 줄임말로 전국시대에 강대한 진(秦)나라에 대항하여 한(韓)?위(魏)?조(趙)?연(燕)?초(楚)?제(齊)의 6국이 동맹하여야 한다. 소진(蘇秦)의 합종설(合縱說)과 6국이 개별적으로 진과 동맹을 맺어 진나라를 섬겨 화평하자는 장의(張儀)의 연횡설(連橫說)을 이른다. 공리(功利)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부국강병을 통해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비자(韓非子) 등의 법가 사상을 가리킨다.

 

及秦始皇 呑二周 滅六國 廢封建爲郡縣 焚詩書 坑儒生 二世而亡

[풀이] 진시황(秦始皇)에 이르러서는 동주(東周)와 서주(西周) 두 주나라를 삼키고 나머지 여섯 제후국을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하였으며 봉건제도(封建制度)를 폐지하고 군현제도(郡縣制度)를 시행했으며,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 서적을 불태우고 유생(儒生)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였는데[焚書坑儒] 2대(代)만에 멸망하였다.

 

漢高祖起布衣成帝業 歷年四百 在明帝時 西域佛法 始通中國 惑世誣民 蜀漢 吳 魏 三國 鼎峙而諸葛亮 仗義扶漢 病卒軍中

[풀이]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평민의 신분으로 일어나 황제(皇帝)의 위업을 이룩하여 왕조의 수명이 4백 년에 이르렀다. 후한의 명제(明帝) 때 서역(西域) 즉 인도의 불교(佛敎)가 처음으로 중국에 들어와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을 속였다.[惑世誣民] 촉한(蜀漢)과 오(吳)와 위(魏) 세 나라가 솥의 세 발처럼 대치하고 있었는데 제갈량(諸葛亮)이 의(義)를 지켜 촉한을 부지하다가 병들어 전쟁터에서 죽었다.

 

晉有天下 歷年百餘 五胡亂華 宋齊梁陳 南北分裂 隋能混一 歷年三十

[풀이] 진(晉)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여 왕조의 수명이 백 년에 이르렀다. 흉노(匈奴)?갈(?)?선비(鮮卑)?저(?)?강(羌)의 다섯 오랑캐 부족이 중국 본토에 이주하여 중국을 어지럽히니 송(宋)?제(齊)?양(梁)?진(陳)에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수(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왕조의 수명이 겨우 30년에 그쳤다.

 

唐高祖 太宗 乘隋室亂 化家爲國 歷年三百

[풀이] 당(唐)나라 고조(高祖)와 태종(太宗)이 수나라 황실이 어지러운 틈을 타 집안(大夫의 采邑)을 바꾸어 새 나라를 세워 왕조의 수명이 3백 년에 이르렀다.

 

後梁 後唐 後晉 後漢 後周 是爲五季 朝得暮失 大亂 極矣

[풀이]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후주(後周)를 오계(五季)라 하는데 아침에 나라를 얻었다가 저녁에 잃어버릴 정도로 왕조의 수명이 짧아서 혼란함이 극에 달하였다.

 

宋太祖立國之初 五星 聚奎 濂洛關? 諸賢 輩出

[풀이] 송(宋) 나라 태조(太祖)가 나라를 세운 초기에 금성?목성?수성?화성?토성의 다섯 별이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규성(奎星)에 모여서 송나라의 문물이 크게 부흥하였다.

 

若周敦? 程顥 程? 司馬光 張載 邵雍 朱熹 相繼而起 以闡明斯道 爲己任 身且不得見容 而朱子集諸家說 註四書五經 其有功於學者 大矣

[풀이] 그리하여 염계(濂溪) 낙양(洛陽) 관중(關中) 민중(?中) 지방에 여러 현인들이 배출되었으니, 주돈이(周敦?), 정호(程顥) 정이(程?) 형제, 사마광(司馬光), 장재(張載), 소옹(邵雍), 주희(朱熹) 같은 학자들이 서로 이어 나와서 유학(儒學)의 도(道)를 밝히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그러나 자기 몸조차 인정받지 못하였다. 주자(朱子)가 여러 학자의 학설을 모아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을 주석(註釋)하였으니 배우는 사람들에게 끼친 공로가 크다.

 

然而國勢不競 歷年三百 契丹 蒙古 遼 金 迭爲侵? 而及其垂亡 文天祥 竭忠報宋 竟死燕獄

[풀이] 그러나 송나라는 국가의 힘이 강하지 못하여 왕조의 수명이 3백 년에 그쳤다. 거란(契丹)과 몽고(蒙古), 요(遼)와 금(金)나라가 번갈아 침략하였고 거의 망할 즈음에 문천상(文天祥)이 충성을 다해 송나라에 보답하다가 결국 연경(燕京)의 감옥에서 죽고 말았다.

 

胡元 滅宋 混一區宇 綿歷百年 夷狄之盛 未有若此者也 天厭穢德 大明 中天 聖繼神承 於千萬年

[풀이] 오랑캐가 세운 원(元)나라가 송(宋)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여 면면히 백 년을 이어갔으니, 오랑캐가 이토록 세력을 떨쳤던 적이 없었다. 하늘이 원나라의 더러운 덕(德)을 싫어하였다. 명(明)나라가 하늘의 명을 받아 성스러운 군주와 신묘한 임금이 계승하시니 아! 천만년을 이어가리라.

 

嗚呼 三綱五常之道 與天地 相終始 三代以前 聖帝明王 賢相良佐 相與講明之 故 治日 常多 亂日 常少 三代以後 庸君暗主 亂臣賊子 相與敗壞之 故 亂日 常多 治日 常少 其所以世之治亂安危 國之興廢存亡 皆由於人倫之明不明如何耳 可不察哉

[풀이] 아, 슬프다! 삼강(三綱)?오륜(五倫)의 도는 천지와 더불어 시종(始終)을 함께 하니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 이전에는 성스런 임금과 명철한 군주, 어진 재상과 훌륭한 보좌관이 서로 함께 삼강?오상의 도를 강론(講論)하여 밝혔다. 그러므로 잘 다스려진 때가 항상 많고 혼란한 때가 항상 적었는데, 삼대 이후에는 용렬(庸劣)한 임금과 어리석은 군주,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역적이 서로 삼강?오상의 도를 파괴하였다. 그러므로 혼란한 때가 항상 많고 다스려진 때가 항상 적었다. 그러므로 세상의 치란과 안위, 나라의 흥망과 존폐는 모두 인륜이 밝혀졌느냐 밝혀지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으니 살피지 않을 수 있는가.

 

東方 初無君長 有神人 降于太白山檀木下 國人 立以爲君 與堯 竝立 國號 朝鮮 是爲檀君

[풀이] 우리 동방(東方)에 처음에는 임금이 없었는데 신인(神人, 환웅(桓雄))이 태백산(太白山, 백두산) 박달나무[檀木]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그의 아들 단군 왕건(檀君 王儉)을 임금으로 세웠다. 요(堯)임금과 같은 시대에 즉위하여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했는데, 이가 단군(檀君)이다.

 

周武王 封箕子于朝鮮 敎民禮義 設八條之敎 有仁賢之化

[풀이]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자 기자가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서 여덟 가지 조목의 가르침을 베푸니 어진 사람인 기자의 교화가 있었다.

 

燕人衛滿 因盧?亂 亡命來 誘逐箕準 據王儉城 至孫右渠 漢武帝討滅之 分其地 置樂浪臨屯玄?眞蕃四郡 昭帝以平那玄? 爲平州 臨屯樂浪 爲東府二都督府

[풀이]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노관(盧?)의 난리를 피하여 조선으로 망명해 와서 조선의 왕 기준(箕準)을 유인하여 내쫓고 왕검성(王儉城)을 점거하였다.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右渠王) 때에 이르러 한(漢)나라 무제가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낙랑(樂浪)?임둔(臨屯)?현도(玄?)?진번(眞藩)의 4군(四郡)을 설치하였다. 한나라 소제(昭帝)가 평나(平那)와 현도를 합쳐서 평주(平州)로 만들고 임둔과 낙랑을 동부(東部)의 두 도독부(都督府)로 만들었다.

 

箕準 避衛滿 浮海而南 居金馬郡 是爲馬韓 秦亡人 避入韓 韓 割東界以與 是爲辰韓 弁韓則立國於韓地 不知其始祖年代 是爲三韓

[풀이] 기준(?準)이 위만을 피해 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서 금마군(金馬郡)에 정착하니 이것이 마한(馬韓)이다. 진(秦)나라에서 망명(亡命)한 사람들이 노역을 피하여 한(韓)나라로 들어오자 한나라가 동쪽 영토를 분할하여 떼어주니 이것이 진한(辰韓)이다. 변한(弁韓)은 한나라(마한)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그 시조와 연대는 알 수 없다. 이것을 삼한(三韓)이라 한다.

 

新羅始祖赫居世 都辰韓地 以朴爲姓 高句麗始祖朱蒙 至卒本 自稱高辛之後 因姓高 百濟始祖溫祚 都河南慰禮城 以扶餘 爲氏 三國 各保一隅 互相侵伐

[풀이] 신라(新羅)의 시조(始祖) 혁거세(赫居世)는 진한 땅에 도읍을 정하여 박(朴)을 성(姓)으로 삼았다. 고구려(高句麗)의 시조 주몽(朱蒙)은 졸본(卒本) 땅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여 스스로 고신씨(高辛氏)의 후손이라 칭하고는 그에 따라 고(高)를 성(姓)으로 삼았다. 백제(百濟)의 시조 온조(溫祚)는 하남(河南) 땅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여 부여(夫餘)를 성씨(姓氏)로 삼았다. 그리하여 삼국(三國)이 각각 한 모퉁이를 차지하여 서로 침략하고 정벌하였다.

 

其後 唐高宗 滅百濟高句麗 分其地 置都督府 以劉仁願 薛仁貴 留鎭撫之 百濟 歷年 六百七十八年 高句麗 七百五年

[풀이] 그 뒤에 당나라 고종(高宗)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분할하여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하여 유인원(劉仁願)과 설인귀(薛仁貴)를 주둔시켜 다스리게 하니, 백제는 왕조의 수명이 678년, 고구려는 왕조의 수명이 705년에 이르렀다.

 

新羅之末 弓裔叛于北京 國號 泰封 甄萱 叛據完山 自稱後百濟 新羅亡 朴昔金三姓 相傳 歷年 九百九十二年

[풀이] 신라 말기에 궁예(弓裔)가 북경 철원(鐵原)에서 반란을 일으켜 나라 이름을 태봉(泰封)이라 하였다. 견훤(甄萱)이 반란을 일으켜 완산(完山)을 점거하여 스스로 후백제(後百濟)라 하였다. 신라가 멸망하니, 박씨(朴氏), 석씨(昔氏), 김씨(金氏) 세 성이 서로 왕위를 이어 왕조의 수명이 992년에 이르렀다.

 

泰封諸將 立麗祖 爲王 國號 高麗 剋殘群凶 統合三韓 移都松嶽 至于季世 恭愍 無嗣 僞主辛禑 昏暴自恣 而王瑤不君 遂至於亡 歷年 四百七十五年

[풀이] 태봉의 여러 장수들이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세워 왕으로 삼으니,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였다. 흉악한 무리들을 제거하고 삼한(三韓 한반도 지역)을 통합하여 개성[松嶽]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고려말엽에 이르러 공민왕(恭愍王)은 후사(後嗣)가 없었고, 가짜 임금인 신우(辛禑)는 어리석고 포악하고 방자하였으며, 공양왕(恭讓王)은 임금 노릇을 제대로 못하여 드디어 망하니, 왕조의 수명이 475년에 이르렀다.

 

天命 歸于眞主 大明太祖高皇帝賜改國號曰朝鮮 定鼎于漢陽 聖子神孫 繼繼繩繩 重熙累洽 式至于今 實萬世無疆之休

[풀이] 천명(天命)이 진정한 군주 태조 이성계에게 돌아가니 명(明)나라 태조 고황제(高皇帝)가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고쳐서 내려주었다. 그리하여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고 성스럽고 신령스런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임금이 거듭 덕을 빛내고 그 덕이 여러 번 백성들에게 스며들어서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만세토록 끝없을 아름다움이다.

 

於? 我國 雖僻在海隅 壤地?小 禮樂法度 衣冠文物 悉遵華制 人倫 明於上 敎化行於下 風俗之美 ?擬中華 華人 稱之曰小中華 玆豈非箕子之遺化耶 嗟爾小子 宜其觀感而興起哉

[풀이] 아! 우리나라는 바다 한쪽 귀퉁이에 치우쳐 있어서 국토가 좁지만 예악법도(禮樂法度)와 의관(衣冠)과 문물제도(文物制度)를 모두 중국의 제도를 따랐다. 그리하여 인륜(人倫)이 위에서 밝혀지고 교화가 아래에서 시행되어 아름다운 풍속이 중국과 비슷하였다. 이 때문에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작은 중화[小中華]라고 일컬으니, 이 어찌 기자(箕子)가 남긴 교화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이 책을 배우는 너희 어린아이들은 마땅히 이것을 보고 느껴서 분발해야 할 것이다.

 

?御製童蒙先習序?

夫此書 卽東儒所撰也 總冠以五倫 復以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列之于次 而其自太極肇判 三皇五帝 夏殷周 漢唐宋以至皇朝 歷代世系 纖悉備錄 逮夫我東 始檀君 歷三國 至于我朝 亦爲俱載 文雖約而錄則博 卷雖小而包則大

其況堯舜之道 孝弟而已 舜之命契 以五品爲重 此文之冠以五倫者 其意宏矣 噫 孝於親然後 忠於君 弟于兄然後 敬于長 以此觀之 五倫之中 孝弟爲先 雖然 詩贊文王曰 於緝熙敬止 敬者 成始終徹上下之工夫也 故 大學要旨 卽敬字也 中庸要旨 卽誠字也 誠敬 亦於學問 車兩輪鳥兩翼者也

今予於此書 以誠敬二字 冠于篇首 誠然後 能免書自我自 敬然後 可以欽體欽遵 學者豈可忽乎哉 予又於卷下 國初開創 受號朝鮮之文 慨然追慕 三復興感也

噫 繼繼承承 重熙累洽 寔是至仁盛德 深恩隆惠 垂裕後昆之致 繼體之君 式體至德 兢兢業業 誠心調劑 至于蕩蕩 誠心愛民 永保元元 則吾國 其庶幾也 吾國 其庶幾也

且我東禮義 雖因箕聖之敎化 三韓以後 幾乎泯焉 入于我朝 禮樂 畢擧 文物 咸備 惜乎 述者之猶遺乎此哉 嗟爾小子 益加勉?也夫

時玄??茂 朝月上浣 命芸館而廣印 作序文於卷首.

[풀이] 임금님이 쓴 머리말[御製序]

이 책은 우리나라 유학자 박세무(1487~1564)가 저술한 것이다. 앞에는 오륜(五倫)을 총론(總論)으로 놓고, 다시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의 도리를 차례대로 열거하였으며, 태극(太極)이 처음 나뉨으로부터 삼황(三皇)?오제(五帝)?하(夏)?은(殷)?주(周)?한(漢)?당(唐)?송(宋)을 거쳐 명(明)나라까지 역대(歷代)의 세계(世系)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단군(檀君)에서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기재하였으니 글은 비록 간략하지만 기록한 내용은 넓고 책은 비록 작지만 포괄하고 있는 뜻은 더없이 크다. 더군다나 요?순(堯舜)의 도(道)는 효도와 공경[孝悌]일 뿐이다.

순(舜)임금이 설(契)에게 명령하시되 오륜(五倫)을 가장 중시하였으니, 이 책에서 오륜을 맨 앞에 놓은 것은 그 뜻이 크다 하겠다. 아! 부모에게 효도한 후에야 임금에게 충성할 수 있고, 형을 공경한 뒤에야 어른을 공경할 수 있다. 이로써 보면 오륜 가운데 효도와 공경이 제일이다. 그러나 ≪시경(詩經)≫에서 문왕을 찬미하여 “아, 경(敬)을 계속하여 밝혔다.” 라고 하였으니, 경(敬)이란 처음과 끝을 이루고 위와 아래에 모두 통하는 공부(工夫)이다.

그러므로 ≪대학(大學)≫의 골자는 곧 경(敬) 한 글자에 있고, ≪중용(中庸)≫의 골자는 곧 성(誠) 한 글자에 있으니, 성과 경은 학문에 있어 수레의 두 바퀴[車兩輪]와 같고 새의 양 날개[鳥兩翼]와 같다고 하겠다. 이제 내가 이 책에서 성과 경 두 글자를 책의 맨 앞에 놓으니, 성(誠)을 이룩한 뒤에야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書自我自]인 병폐를 면할 수 있고, 경(敬)을 유지한 뒤에야 공경히 체행하고 공경히 따를 수 있을 것이니, 배우는 자가 어찌 이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또 책 끝에 ‘국초에 나라를 세우고 조선(朝鮮)이라는 국호(國號)를 받았다’는 부분에 이르러서 개연히 추모하여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감회를 일으켰다. 아! 끊임없이 이어서 거듭 덕을 빛내고 그 덕이 여러 번 백성들에게 스며든 것은 실로 선왕들께서 지극한 덕과 깊은 은혜를 후손들에게 넉넉히 남겨주시어 이룩된 것이다.

그러하니 국가의 체통을 이어갈 임금들이 이 지극한 덕을 몸소 행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성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어 공평함에 이르고, 성심으로 백성을 사랑하여 영원토록 백성들을 보호한다면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며, 우리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예의(禮義)는 비록 기자(箕子)의 교화에서 비롯되었으나 삼한(三韓) 이후에는 거의 없어졌는데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서 예악(禮樂)이 모두 거행되고 문물이 다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이러한 사실을 빠뜨리고 기록하지 않았으니, 애석하다. 아 ! 어린아이들은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임술년(1742)년 1월 초에 교서관(校書館)에 명령하여 인쇄해서 널리 배포하게 하고 책머리에 서문을 쓰다.

 

?跋文?

孟子曰 讀其書 誦其詩 不知其人 可乎 余幼時 見人家子弟初學者 無不以是書爲先 而第不知出於何人之手矣 今朴上舍廷儀氏 來謂余曰 此 吾高祖諱世茂之所編也 余不覺驚喜曰 今日 始知其人矣

公 爲明廟朝名臣 其學問有淵源 而門路亦甚正 觀於此編 則可知矣 其該括約說 無非學問中體認一大公案 而所序歷代 又史家之總目也

或疑編內所輯理氣性命等說 非童學所能知 此則不知作者本意所在也 朱子嘗論仁說曰 此等名義 古人之敎 自小學之時 已有白直分明訓說 得知此道理 不可不著實踐履 所以實造其地位也 若茫然理會不得 則其所以求之者 乃其平生所不識之物 復何所向望慕愛而知所以用其力耶 今之童學 略識諸般名義界限 終有所歸宿者 必於此書而得之 其功 豈不大哉

竊聞今上殿下每臨筵 喜說此書 睿學之明 必有以識此矣

公 字 景藩 咸陽人 登第 始爲翰林 官止監正 蘇齋盧相公守愼 以嘗著此書 訓其子弟 載公墓碣云

崇禎紀元之商橫?茂陽月日 恩津宋時烈 謹跋.

[풀이] ?발문(跋文)?

맹자(孟子)가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의 시(詩)를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되겠는가?” 하였다. 내가 어릴 때 다른 집안 자제들을 보니 초학자들이 모두 이 책부터 먼저 배웠는데 다만 이 책이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진사(進士) 박정의(朴廷儀) 씨가 내게 찾아와 말하기를 “이 책은 우리 고조(高祖)이신 휘(諱)가 세무(世茂)인 분이 엮으신 것입니다.”하니, 나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고 기뻐서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공은 명종(明宗) 때의 이름난 신하이다. 그의 학문은 연원(淵源)이 있고 문로(門路 방법과 순서) 또한 매우 바르니,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내용이 포괄적이면서도 간략하게 설명하였으니, 이는 학문하는 가운데 직접 체득(體得)해야 할 하나의 큰 공적인 의론이요, 차례로 서술한 역대의 사실은 또 사가(史家)의 총체적인 목차이다. 어떤 사람은 이 책에 실린 이(理)?기(氣)나 성(性)?명(命)과 같은 말은 아이들이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이는 저자의 본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

주자(朱子)가 일찍이 인(仁)에 대한 내용을 논하여 말하기를 “이러한 종류의 명칭과 의미는, 옛 사람들이 가르칠 때에 소학을 배울 때부터 이미 이러한 명칭에 대한 명백하고 간략하고 분명한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도리를 착실하게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이 때문에 실제로 이러한 경지에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까마득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면 그가 찾는 것은 마침내 평생토록 알지 못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니, 다시 어디를 바라보고 사모하여 힘을 쓸 줄을 알겠는가?” 라고 하였다.

요즘 배우는 아이들은 이러한 여러 가지 명칭과 의미가 구분됨을 대략이나마 이해하여, 마침내 귀결되는 바가 있음을 아는 것은 이 책에서 얻은 것일 것이니, 그 공로가 어찌 크지 않겠는가. 들으니 지금 성상께서 경연(經筵)에 참석하실 때마다 이 책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즐기신다고 하니, 임금의 밝으신 학문이 반드시 이 점을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공의 자(字)는 경번(景蕃)이요 본관은 함양(咸陽)이니. 과거에 급제하여 처음에 한림(翰林)이 되었고 벼슬이 군자감 정(軍資監正)에 이르렀다. 정승을 지낸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이 지은 공의 묘갈명(墓碣銘)에 “공이 일찍이 ≪동몽선습(童蒙先習)≫이란 책을 지어 그 자제들을 가르쳤다.”라고 썼다.

숭정(崇禎) 기원 후 경술년(1670) 10월 어느 날에 은진(恩津) 송시열(宋時烈)은 삼가 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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